[130208] [닌타마 란타로 4학년] 그가 모두에게, 모두가 그에게
사이토 타카마루. 15세, 학년은 4학년.
그는 나이로만 따지자면 곧 닌술학원에서의 졸업을 앞두었을 것이며 실력도 프로 닌자와 맞먹는다는, 닌술학원에 모든 닌타마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을 6학년이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계기로 닌자로써의 지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닌술학원에 편입한 편입생이기에 6학년의 어둡고 조금 칙칙해 보이는 초록색 계열의 닌자복이 아닌, 자신의 나이인 15살보다 2살이나 어린 4학년들의 와인색깔 닌자복을 입는다. 뭐, 어자피 그에게 15세의 나이로 4학년에 편입한다는 그 조건이 딱히 해롭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앞서 말했듯 사이토 타카마루는 닌자의 지식이나 실전 경험이 1학년 아이들보다도 부족하기에, 사실 만약에 실력상으로 학년을 매기게 된다면 타카마루는 갓 입학한 1학년 아이들의 닌자복을 입고 있어도 별로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덩치는 6학년과 맞먹는 사람이 조그마한 1학년 꼬마 아이들과 함께 우물 정(#)자와 원 모양이 새겨진 파란색의 닌자복을 입고 한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의 물음에 복창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 보자. 솔직히 말하자면 남이 보기에 참말로 우스운 꼴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간 그는 현재 닌술학원에서 4학년이고, 가끔 1학년 반에 가서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기 위한 수업도 듣고 공부하며 나름 제 할 일도 열심히 하고 있는 성실한 학생 중에 꼽혔다. 온 힘을 다해서 숙제를 하다가도 짬짬이 여유가 나면 쿠노이치들의 부탁으로 머리를 손질해 주며「카리스마 머리 손질사」의 실력을 발휘하는 등, 타인이 보기엔 그는 닌술학원에서 제법 보람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던지 항상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아픔을 가슴속에 귀중한 보물 모시듯 어떻게든 품어두고 산다. 슬슬 가을을 알리는 하늬바람이 솔솔 불어오기 시작한 무렵부터였는가, 하늬바람과 함께 찾아온 불행인지는 모르겠다만 그 날부터 사이토 타카마루는 웃지 않게 되었다.
슬럼프는 생각보다 의외의 순간에 찾아온다. 타카마루는 평소와 다름없이 늘상 반복되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닌타마의 친구' 책에 수면제가 발라져 있는 양 지루하더라도 그는 온갖 정신력을 다 동원하며 꾹 참고 읽었고, 얇은 종이 위 숙제가 죄다 외계어로 보이는 것 같았지만 머리를 감싸매는 한이 있더라도 어떤 방법으로라도 이리저리 풀어 내어 그게 오답인지 정답인지는 상관 없이 답을 열심히 써 내려갔다. 그렇게 시간은 얼마나 지났을까, 공부와 오랜 분투를 치르고 마침내 오늘 하루 그의 학문의 시간도 끝났다. 몇 시간동안 쥐고 있어 손과 동화될 뻔한 붓을 잉크가 책에 묻지 않도록 조심히 붓말이개에 말아 넣자마자 타카마루는 성취감과 기쁨이 한데 뒤섞인 기지개를 한번 쭉 펴고 그대로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그가 뒤로 누워서 윗쪽을 응시하고 있으니 천장에 깔끔하게 잘도 붙어 있는 아이보리색 벽지가 넓게도 보였다. 타카마루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이 시간이다. 이맘때쯤 얻는 금쪽같은 자유시간이 암묵적으로 [오늘 하루에 내가 해야 할 모든 일과를 마쳤습니다] 를 뜻하기 때문일까, 사실 타카마루가 하루에 해내가야 할 일정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남들이 조금 더 쉬고 눈을 붙일 시간에 타카마루는 교과서를 한 번 더 읽고 한 문제라도 더 풀어나갔기에 비교적 받는 스트레스도 이쪽이 더 컸고 피로도 많이 쌓인다. 게다가 이건 모범생인 척을 하기 위해 한 두번 만 하는 공부도 아니었다. 타카마루는 자신의 지식 수준이 얼마밖에 안 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편입되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쭉 이 일과를 꾸준히 실천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동급생의 지식을 순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잠깐만, 순간적으로 어떠한 부정적인 생각이 타카마루의 뇌리를 팟 하고 스쳐감과 동시에 그는 피로에 의해 게슴츠레하게 뜨고 있던 눈을 크게 떠 보였다. 잘 생각해 보니, 분명히 동급생과 지식 수준을 맞추기 위해 시작한 자율학습인데 수준이 맞춰지기는 커녕 이제 겨우 1학년 아이들의 수준과 엇비슷하게 따라갔을 뿐이다. 게다가 타카마루는 실전도 솔직히 젬병인지라 웬만히 간단한 임무, 예를 들자면 전쟁 중인 성의 성주에게 편지를 전하는, 1~2학년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성공할 수 있을 임무도 금방 실패해 버리 는 썩 좋지 못한 심부름꾼이었다. 타카마루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 학습능력으로 올해 말까지 1학년에서 4학년까지의 모든 닌술지식을 마스터할 수 있을까? 자, 또 이대로 4학년이 끝나면 5학년 승급시험을 치르게 될 것인데, 과연 타카마루는 그 시험에서 살아남고 당당히 5학년의 보라색깔의 닌복을 입을 날이 올까? 자신은 정말로 닌자에 적합한 사람이 맞을까? 사실 그도 평소에 자신의 미래는 너무 불확실하여 가망이 없다고 싱겁게나마 느끼고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암울한 생각들 사이에서 다시금 그 느낌을 떠올려 보니 타카마루는 본인이 너무나도 하찮은 녀석, 그저 '닌자' 라는 직업에 겁도 없이 뛰어든 철부지 어린아이같았다. 타카마루는 이런 웃긴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내심 짜증난다고 느꼈지만, 그 웃긴 생각이 거짓이라고 부정할 증거가 없다는 것에 더 짜증을 느끼며 아무도 쳐다보고 있지 않은 얼굴을 살짝 구겼다.
”……이런 감정, 자괴감일까나?"
타카마루는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한 마디 중얼거렸다. 그는 계속 멍한 얼굴로 천장을 응시하였고, 왼 팔을 뻗어 닿지 않을 아이보리색 천장 벽지 쪽으로 올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손의 관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꺾어보인다고 해도 방금 전에 이상한 곳으로 흘러버린 자신의 생각 덕분에 자신감을 상당히 잃었단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는 뭐라도 제스쳐를 취하고 싶었다. 쓸모 없는 짓이긴 하지만 그 작은 행위에서라도 위안을 받고 싶었다. 어자피 누워있는 상태로는 뭘 하던지간에 타카마루의 팔은 저 높이 아이보리색 천장에 닿지는 못하겠지만. 뻗은 팔이 살살 저려오자, 타카마루는 높게 올려진 팔을 자신 쪽으로 천천히 접고 그대로 자신의 가슴팍 위에 떨어트렸다. 바깥에선 해가 슬슬 떨어져 노을빛이 수줍게 불그스름히 익은 얼굴을 드러내, 가을을 맞아 노랗게 옷을 갈아입던 참인 나뭇잎들과 조합이 잘 맞는 색이 되었고 하급생 아이들이 제들끼리 술래잡기나 닌자놀이 따위를 하고 노느라 왁자지껄했던 마당이 점차 고요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방 안에서도 그의 찌푸려진 얼굴이 조금씩 편해지는 상 싶더니 타카마루는 금세 숨소리를 색색거리면서 고요하게 잠에 빠졌다.
"타카마루 형, 형네 반은 이번에 야외수업인데요."
교실 안에서 떠드는 아이들의 소리에 제법 시끄러운 복도에서 타무라 미키에몬이 4학년 하(は)반 교실로 들어가려던 타카마루를 붙잡고 말했다. 그러자 타카마루는 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신이 열려던 미닫이문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 한 삼 초 정도 문 앞에서 멍하니, 마치 지각한 아이가 교실에 들어갈까 말까 서성이는 모양처럼 서 있더니 다시 하(は)반 교실의 문의 손잡이를 잡고 왼쪽으로 밀었다.
"타카마루 형?"
"으응, 뭐 놔두고 온 게 있어서."
타카마루는 자신을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멍하니 서 있는 미키에몬을 향해 한 마디를 남기고, 아무도 없이 정적만이 채우고 있는 하(は)반 교실에 들어갔다. 창호지가 잘 발라져 있는 미닫이문이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히자 교실 앞 복도에는 어벙한 표정으로 미닫이문 사이로 타카마루가 사라지는 광경을 마지막까지 쳐다보고 있던 미키에몬밖에 없었다. 미키에몬이 어이없어 할 만한게, 지금은 1교시 시작 전이다. 아침 첫 수업부터 교실에 놔두고 온 게 과연 뭐가 있을까? 어제 방과후에도 충분히 그 '놔두고 온 것' 을 가지고 올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타카마루네 반의 1교시는 야외 수업이라 특별히 가지고 갈 물건은 없을텐데 왜 그는 저런 이상한 행동을 취하는 것인가.
미키에몬은 그저께부터 타카마루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다. 그제 저녁식사 시간에는 타카마루가 저녁을 먹으러 나오지 않았던 것을 선두로 어제도 방과 후에 쿠노이치들이 머리를 손질해달라는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미키에몬은 그가 그렇게 앙칼진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태도를 보였었다는 것은 분명 타카마루가 지금 매우 저기압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예상했다. 어쨌건 미키에몬이 자신의 반인 로(ろ)반 교실로 향하려고 발걸음을 뗀 순간 하반의 미닫이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교실 안에서 들어갈 때와 같은 무표정으로 타카마루가 나왔다. 그 무표정을 계속 응시하고 있자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아, 미키에몬 군 아직 안 갔네?"
미키에몬은 자신을 바라보며 무덤덤하게 말하는 타카마루를 보자니 갑자기 당황스러워져 '이제 갈 거에요' 라는 말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 복도에 홀로 남겨진 타카마루는 자신을 뒤로하고 뛰어간 미키에몬이 그의 반인 로반 교실로 허겁지겁 달려가 미닫이문을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열고 자신의 급우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을 혼자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미움 받고 있는 걸까나…….」 하는 생각이 타카마루의 전두엽을 이리저리 스쳐가고, 이어서 「좋아할 리가 없겠지」 하는 대답이 그의 가슴속 한 구석에서 들려왔다. 미키에몬이 자신을 일부러 피했다고 생각한 타카마루는 암울해지려던 참에, 땡— 하며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정에서 울려오자 그는 그제서야 야외수업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약속에 늦은 아이가 약속 장소로 헐레벌떡 뛰어가듯 타카마루도 허겁지겁 건물에서 빠져나갔다. 그가 떠나가버린 휑한 복도는 적막만이 쓸쓸하게 흐르고 있었다.
"타카마루 형 말인데, 요즘따라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온 학교에 맛있는 음식 냄새가 퍼져 나가고 있을 때 즈음, 교내의 학생들이 한둘씩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남을 알림과 동시에 점심식사 시간임을 알려주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1학년 하(は)반에서부터 식당까지, 드디어 밥 시간이 왔다며 좋아라 뛰어가는 신베와 그를 따라잡기 위해 뒤에서 마라톤 선수인 마냥 열심히 쫓아가는 키리마루와 란타로가 보였다. 기나긴 추격전(?) 끝에 신베가 식당에 1등으로 도착하고, 조금 시간이 지나니 점차 2학년, 3학년에서 고학년까지 다들 주린 배를 잡고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 4학년인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 타무라 미키에몬, 아야베 키하치로도 그 무리들 중 일부였다. 그들은 입구에서 서성이며 어디에 앉을까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 맨 끝 창가 자리가 비어있음을 확인하고 소음이 되지 않을만한 발소리를 내며 걸어가 의자를 끌어당기고 앉았다. 식당 안으로 들어오자 맛있을 것만 같은 식당 아주머니의 음식 냄새가 바깥에서보다 더 강렬하게 풍겨왔다. 그 냄새는 닌타마들은 물론 교사진마저 군침돌게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간에, 자리에 앉은 4학년들은 곧 나올 반가운 점심식사를 기다리며 아까 식당 입구에서 타키야샤마루가 던진 의문문을 곱씹었다.
"근데, 타카마루 형이 왜?"
회색빛 포니테일 머리칼에 항상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는듯한 소년인 4학년 이(い)반의 함정파기 소승이라 불리는 아야베 키하치로가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 삽인 후미코의 길쭉한 막대 부분을 자기 다리 사이에 끼워놓고 후미코의 손잡이 부분에 턱을 괸 자세로 질문자인 타키야샤마루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아야베는 애초에 타카마루와 같은 반도 아니고 원래 남의 일에 별 관심이 없는 성격인지라 타카마루와 딱히 일대 일로 면전을 치룰 일이 별로 없었기에 타키야샤마루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의도를 잘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키하치로는 모르는건가…… 뭐 어쨌건 나도 조금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어. 오늘 아침에도 그렇고."
타무라 미키에몬이 붉은색의 눈동자를 끔뻑이며 약간 걱정되는 투의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이 끝맺히자마자 식당 아주머니가 미소된장국과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쌀밥을 챙겨들고 '맛있게들 먹어요~.' 하는 인사와 함께 그들의 앞에 턱 하는 소리와 함께 내려놓았다.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먹음직스런 점심식사를 한번 내려다 보고 '잘 먹겠습니다' 라고 중얼거림과 동시에 자신의 앞에 가로로 가지런히 놔두어져 있는 젓가락을 오른손으로 집으며 타키야샤마루가 미키에몬에게 물었다. 그의 옆에서는 아야베가 식사를 하기 위해 자기 다리 사이에 끼워놨던 삽을 의자 뒤 벽쪽에 기대놓으려 했던 모양이었는지 열심히 갖은 애를 쓰며 벽에 어정쩡하게 기대어 있는 후미코의 중심을 낑낑거리며 맞추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약간 거슬렸는지 타키야샤마루가 아야베를 살짝 노려보았고, 그 시선을 의식한 아야베도 지지 않고 자신을 못마땅히 쳐다보는 룸메이트를 향해 눈을 흘겼다. 어찌되었건 그 와중에 미키에몬은 엣헴 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꺼낼 준비를 했다.
"그러니까 아침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말이지……."
미키에몬은 말을 끝내고 가만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두 소년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키야샤마루는 허공을 가만히 쳐다보며 '흐음.' 하는 숨소리를 내뱉고 미키에몬이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을 곱씹어보는 듯 나름 진지한 표정으로 상황에 임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반면 아야베는 미키에몬이 계속 이야기를 할 동안에도 삽 중심을 맞추다가, 어느 순간부터 '잘 먹겠습니다~' 며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아야베의 그런 행동은 말을 하는 사람 입장으로썬 조금 껄끄러운 태도였다. 뭐 애초에 그는 마이페이스 기질이 다분한 사람이니 이해는 간다마는, 그렇다고 아야베가 남을 대놓고 무시할 만큼 냉혈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아야베가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던 것도 아닐 것이라 생각되어 차마 미키에몬이 그에게 '이야기 듣고 있어?' 라며 다그치기가 뭐했다. 어찌되었건 그러던 와중에 뜬금없이 타키야샤마루가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식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알았다! 이 「닌술학원 전륜 콘테스트 1위에 학년 성적 최우수」인 타키야샤마루님께서 타카마루 형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아내셨단 말씀! 그러니까 타카마루 형은……"
"슬럼프."
늘 그러듯, 타키야샤마루가 쓸데없이 자기 자랑을 덧붙이면서 자신만만한 표정과 목소리로 외치는 말을 아야베가 귀찮은 듯이 매우 짧고 간단하게 끊어버렸다. 아야베의 말이 끝나고나서 타키야샤마루의 표정이 굳어지고 한 2초 정적이 잠시 흐르더나 싶더니 그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재빠르게 아야베에게 달려들어 마구 삿대질을 해 대면서 '망할 키하치로 녀석! 왜 또 내 말을 끊는거야!' 라며 울분(?)을 토했다. 아야베는 더 듣기도 싫다는 듯 아니꼬운 표정으로 양 손으로 그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굳이 표현해보자면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어린 다혈질 꼬마애가 매사에 무심한 형한테 덤벼드는 중이라 할까, 하여튼간에 타키야샤마루는 식당 아주머니를 비롯한 다른 닌타마들이(특히 미키에몬) 자신을 얼음같이 살벌하게 쳐다보는 듯하자 언성을 낮추고 여전히 식지 않은 얼굴로 팔짱을 낀 채 의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뭐 진짜로 슬럼픈지 아닌지는 타카마루 형 본인이 제일 잘 알겠지만."
타키야샤마루가 조용해지자 미소된장국이 든 그릇을 양 손으로 잡고 자신의 입으로 가져다 대 양이 어중간하게 남은 국물을 한 입에 다 마셔버리고 나서 아야베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젓가락을 밥그릇 위에 올린 후 '잘 먹었습니다.' 라며 자신의 삽을 챙겼다. 미키에몬과 타키야샤마루는 식사를 반도 못 끝냈는데 아야베가 이렇게 밥을 빨리 먹은 것은 아까전에 미키에몬이 열심히 침 튀기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무렵에도 제 혼자서 식사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찌됐던 그는 어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함정을 파고 싶은 모양인지 자신 앞의 식판을 식당 아주머니에게 가져다가 드리고 아까 열심히 벽에다 기대어 놓은 삽 후미코를 어깨에 걸친 모습으로 유유히 혼자서 식당을 나갔다. 타키야샤마루와 미키에몬은 그런 아야베의 뒷 모습을 벙져있는 얼굴로 잠시 쳐다보다가 곧바로 서로 마주보았다.
"일단 타카마루 형이 슬럼프라 치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미키에몬이 젓가락 사이에 집어져 있는 밥을 입 속에 털어넣고 자신의 앞에서 뚱한 얼굴로 양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있는 타키야샤마루에게 물었다. 그는 계속 자신의 대사가 아야베에게 빼앗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미키에몬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눈 앞의 밥과 미소된장국을 비롯한 반찬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아야베에 이어 타키야샤마루마저 자신의 말을 무시하자, 미키에몬은 '이 놈이나 저 놈이나 말 안 듣기는 매한가지로구만.' 하고 중얼거리며 그냥 자신의 식사에 전념하기로 한 듯 노란 빛이 감돌아 상당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도이 선생님이라면 질색을 했을 듯한) 어묵볶음을 비틀어진 젓가락 사이에 끼웠다. 젓가락을 입에 가져대어 어묵을 입 속으로 받아들이니 그의 입 속에서 어묵 특유의 고소함과 간장과 함께 볶아진 모양인지 짭쪼름한 맛이 섞임과 동시에 겉은 미끌하고도 속은 살짝 텁텁한 감각이 전해져 왔다. 그 맛을 음미하고 있는 와중에 미키에몬의 귀에는 앞에서 타키야샤마루가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4학년……수치……"
그 중얼거림은 계속 듣고 있자니 살짝 음산했다.
"뭐라고, 타키야샤마루?"
어렸을 때 배운 '음식은 여러번 씹어야 한다' 하는 식습관을 지키고자 어묵을 꼭꼭 씹다가 어느 정도 잘게 부서진게 느껴진 듯 하니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 후, 미키에몬이 살짝 짜증이 서려 있는 목소리로 앞에서 혼자 조잘대고 있는 소년을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타키야샤마루는 '……같은 학년……' 이라는 둥 이상한 중얼거림을 끊임없이 내뱉고 있었다.
"아, 뭐라는 거야! 좀 똑바로 말 할 수 없어?"
타키야샤마루가 그답지 않게 계속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만 하자 지금까지 계속 참아온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짜증이 드디어 폭발한 듯 미키에몬이 표정을 구기며 타키야샤마루를 다그쳤다. 솔직히 미키에몬 입장에선 짜증이 안 날수가 없는게 아까 아야베가 자신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던 것부터 썩 좋은 기분은 아녔을 것이다. 게다가 이젠 타키야샤마루까지 앞에서 답답하게 혼자 조잘거리고 있으니 그의 성격상으로는 동급생들에 대한 짜증이 거의 한계점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왜 화를 내고 난리야!"
"내가 지금 화 안 내게 생겼냐? 아까부터 계속…… 아니, 관두자.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도대체."
미키에몬은 은근히 생각이 깊었다. 여기서 화를 더 내봤자 좋을게 없다는 것을 예감하고 일부러 자신의 마음을 좋게 좋게 다스리며 이미 끓는점에 도달한 분노를 살살 식히며 최대한 살갑게 타키야샤마루를 대했다. 나름 라이벌이라 칭하는 자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기분도 솟구쳤지만 그런거 생각해 봤자 짜증만 더 날 뿐이었다. 그리고 타키야샤마루가 미키에몬을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고 굳게 앙다물어져 있던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우린 타카마루 형과 같은 4학년인데, 뭔진 모르겠지만 힘들어하고 있는 타카마루 형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그거야말로 4학년의 수치잖아? 그러니까, 도와주자는 거야."
"돕자니, 타카마루 형을? 어떻게?"
붉은 눈동자를 살살 굴리며 미키에몬이 평소때와는 살짝 다르게 진지해져 있는 듯한 타키야샤마루에게 물었다. 그러고 타키야샤마루는 한 3초간 다시 고민을 하는 듯 시선을 식판에 가져다 대고 '생각하는 사람' 석상의 손동작과 비슷하게 턱을 괴고 있었다.
"……나나마츠 코헤이타 선배를 찾아가 볼래?"
타키야샤마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미키에몬이 '뭐어?' 하는 말과 함께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뜬금없이 나나마츠 선배를 찾아가자니. 타키야샤마루가 체육위원회라 그 선배와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일과 딱히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나나마츠 코헤이타 선배를 찾아가자니, 미키에몬에게 타키야샤마루의 발언은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미키에몬은 차라리 시오에 몬지로 선배를 찾아가는게 어때, 라며 비아냥거렸다. 선배에게 조언을 찾을거면 일명 '폭군'.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 나나마츠 코헤이타 선배보다 '지옥의 회계위원장' 시오에 몬지로 선배쪽에서 더 좋은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다른 6학년들도 나쁘지 않은데, 왜 하필이면 나나마츠 선배?
"그 선배, 지금의 타카마루 형과 비슷한 상태였던 적이 있거든."
"에엑, 나나마츠 선배가?"
놀라는 어조로 미키에몬이 묻자 타키야샤마루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같은 체육위원회가 아닌 미키에몬은 타키야샤마루의 말을 쉽사리 믿기가 어려웠다. 그 나나마츠 선배가 현재 타카마루 형처럼 암울한 분위기였던 적이 있다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 물어도 '에이~' 하며 장난으로 받아들일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미키에몬의 눈 앞에 비치는 타키야샤마루는 장난같은 소리를 내뱉을 표정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사뭇 진지해 보였다.
"그러니까 내 말은, 타카마루 형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지 나나마츠 선배에게 상담받자는 소리다. 그 선배, 겉으론 단순해 보여도 의외로 좋으신 분이니까 나쁘지 않은 대답을 받을 수 있을거야."
그는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식탁 위로 살포시 올려놓으며 말을 마쳤다. 미키에몬은 여전히 그의 제안이 미덥지 못했던건지 하지만…… 이라며 뭐라 할 말이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여기서 괜히 몇 마디 더 덧붙였다가 상황이 더 안 좋은 방향으로 치우칠까봐 곧바로 입을 다물고 마지못해 수긍하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여준 미키에몬의 태도가 만족스러웠는지 그제서야 타키야샤마루의 입꼬리가 눈에 띄게 올라갔다. 그러고 나선 기분이 좋아진 듯 '좋아! 지금 당장 6학년 로반 나나마츠 코헤이타 선배 를 찾아간다!' 라 남 다 들으란 듯이 떠들썩하게 외치고 나서 자신이 앉아있던 아무 죄 없는 원형 식당 의자를 뒤로 기세 좋게 박찬 후 식당의 테이블 사이를 요리조리 제치며 쏜살같이 뛰어갔다. 그가 식당 입구까지 다다랐을 즈음 뒤에서 당황스런 목소리로 미키에몬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들은 체 만 체 하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타키야샤마루는 한 가지 잊은게 있었다.
"음식을 남기는 것은 용서하지 못합니다,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 군."
그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목덜미가 잡힌 채로 다시 끌려와서 울며 겨자먹기로 남아 있던 자신의 밥그릇을 비워야만 했었다. '그러게 내가 불렀잖아.' 라며 한심한 표정으로 미키에몬이 쯧쯧 하는 소리로 혀를 찼다.
햇살이 화사하게 교장 선생님의 정원에 가지런히 일렬로 놓여져 있는 화초들을 따스하게 비추고 있을 무렵, 닌술학원에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고 드디어 모두가 자유가 되는 귀중한 시간이 돌아왔었다. 기숙사에 들어가 두 다리 쭉 뻗고 푹 쉬는 학생이 있는데에 반해 교정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학생이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하급생들이었다. 그런 행복한 자유시간에 6학년 기숙사 근처에서는 4학년의 와인색깔 닌자복을 입은 소년들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러 온 도둑고양이 새끼마냥 어슬렁거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상당히 긴장한 기색의 타키야샤마루와 미키에몬과는 다르게, 아야베의 얼굴엔 누가 봐도 '나 귀찮음' 이란 글자가 쓰여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쓸데없다 생각하는 일을 계획한 자신의 동급생들의 뒤를 흥미없다는 듯 느릿느릿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들어가야 할 6학년 기숙사들은 확실히 다른 학년의 기숙사보다 방의 갯수가 눈에 띄이게 적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 승급 시험에 낙제한다던지, 닌자의 각종 임무로 인한 부상, 사망 등의 불상사가 대표적인 이유들이었다. 덕분에 6학년의 학생 수는 현 1학년들의 수에 비하면 매우 적었는데, 그 사실은 닌술학원 1학년부터 5학년까지의 학생들에겐 나름대로 '살아남아서 올라가야 한다' 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현재 6학년들도 몇 년 전까지는 그 빌어먹을 무게감에 짓눌려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을 지는 본인들밖에 모를 것이다.
어찌되었던, 아무나 대충 곁눈질로만 봐도 3~4개밖에 안되는 방들 의 근처에서는 4학년들이 '네가 가.' 라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무리 편하고 후배들에게 다정할지 몰라도 6학년은 '선배'라는 존재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기에 같은 위원회인 타키야샤마루도 선뜻 용기를 내서 들어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괜히 들어갔다가 무례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1학년부터 그랬듯이, 학년을 막론하고 일단 '자신보다 높은 학년'의 방에 들어간 다는 것 자체가 긴장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4학년들은 6학년 로(ろ)반의 [나카자이케 쵸지], [나나마츠 코헤이타] 라는 글 이 붓으로 잘 쓰여져 있는 팻말이 미닫이문 왼쪽에 일렬로 걸려진 기숙사 방의 평상 아래에서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었는데, 그 광경은 하급생들이 보기엔 한심해 보였을 모습이었지만 5학년들이나 6학년이 보았을 땐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들은 '귀엽다' 란 생각을 하게끔 하였다. 결국 약 십분간의 다툼 끝에 그들이 생각해 낸 최선의 방법은 고작 가위바위보였다. 겉으론 어떨지 몰라도 아직 열 세살밖에 안 된 그들이었기에 참으로 어린아이다운 발상이었다. 긴장된 공기의 흐름속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가위, 바위, 보!' 하는 구령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굵고 짧게 절규의 비명소리가 흘러나온 것으로 보아, 겨우 한 번의 게임이 있었을 뿐인데 벌써 승자와 패자 가 가려진 모양이었다. 서로 손을 마주잡고 날뛸 듯 좋아하는 타키야샤마루와 미키에몬과는 다르게도 1학년 로반 학생들이 지을법한 침울한 표정으로 자신이 낸 주먹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아야베. 상황을 보아 패자는 아마도 아야베 키하치로인 것 같았다. 그는 미련이 남는 듯, 아주 날아갈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동급생 둘에게 '삼 세판!' 을 비굴하게 외치고 있었지만 그걸 들어줄 친구들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가야하는가 싶었던 아야베는 탄식의 한숨을 길게 내뱉았다. 그 때 였다.
"바깥이 왜이렇게 시끄러워?"
그들이 계속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고민하고 있었던 방의 미닫이문이 거칠게 드르륵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굉장히 짜증난다는 어투로 변성기가 온 듯 제법 남자다운 목소리가 그들을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4학년들이 그토록 만나길 원했던(?) 6학년 로반의 나나마츠 코헤이타의 것이었다. 방 안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목소리가 난 쪽으로 거개를 홱 돌려 코헤이타를 발견한 와인색 닌자복을 입은 소년들은 그가 상당히 반가운 모양인지, 특히 아야베가 구세주를 만난 듯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 채로 나나마츠 선배! 하며 그를 불렀고, 코헤이타는 의외로 자신을 너무 살갑게 맞이하는 아이들을 보며 '응? 4학년들이잖아? 여기엔 왜 있어?'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아, 처음부터 이렇게 바깥으로 나와 주었다면 4학년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고민하고 있진 않았을텐데. 본의 아니게 삽질한 셈이 되었다. 어쨌던 코헤이타는 미키에몬, 타키야샤마루, 아야베가 평소답지 않게 1학년 아이들마냥 순수한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얘들이 뭘 잘못 먹어서 이러나, 싶었다.
"잠깐만, 너네들 말을 해, 말을!"
코헤이타가 그 뜬금없는 4학년들의 해맑은 눈빛들이 슬슬 부담스러웠는지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그들은 지금 코헤이타를 만났다는 것 자체에 기쁨에 겨웠던지라, 그제서야 할 말이 떠오른 듯 아아, 하며 눈을 빛내는 것을 멈추었다.
"나나마츠 선배, 타카마루 형에 대해 상담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요……."
어쩌다 보니 4학년 아이들 모두가 코헤이타와 그의 룸메이트 쵸지가 머물고 있는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생각보다 방 안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것이 깔끔했고 문을 열자마자 입구에선 마치 연지를 꽃잎 전체에 살살 발라놓은 듯한 진분홍색 나팔꽃을 받치고 있는 고풍스런 화분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 방의 상태가 활발하고 사고회로가 단순한 코헤이타의 성격을 봐선 매우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일단 저 화분이 안 깨지고 용케 방 안에서 버티고 있는 것 부터가 신기로웠다. 이부자리를 깔아놓는 방 한가운데쯤에 코헤이타가 풀썩 앉았고, 4학년들도 그의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그나마 위원회 활동으로 인해 코헤이타와 가장 친분이 두터운 타키야샤마루가 며칠 전 부터의 사이토 타카마루의 상태나 행동에 대해서 주절주절 말을 내뱉었다. 그저께 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은 것부터 시작해 여러가지 일어난 일들을 열심히 설명했고, 타카마루가 평소처럼 학문에 힘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도 말했다. 코헤이타는 마치 웅변대회에 나와 상을 노리고 있는 듯한 아이들같은 4학년의 말을 나름 진지한 기색으로 들어주고 있었다. 마침내 타키야샤마루가 '……그렇게 된 거에요.' 라며 기나길었던 말의 종지부를 찍자, 양 손을 깍지껴서 턱을 받치고 있는 자세로 가만히 이야기에 집중하던 대충 그럴듯한 대답을 생각해낸 듯 코헤이타가 흠흠 하며 헛기침을 했는데, 4학년들은 그런 그를 보고 제법 도움이 될 것 같은 답변이 나올 것만 같았기에 기대감과 긴장감이 섞여진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주변에서 잘 해주면 돼."
코헤이타의 그답지 않을 정도로 나긋한 한 마디에 얼이 빠진 목소리로 예? 하며 미키에몬이 되물었다. 뜬금없이 주변에서 잘 해주라니, 그런 것 정도는 4학년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기분이란 게, 옆에서 '힘 내세요! 화이팅!' 이라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바보에요? 왜 이런 것도 못 해요?' 란 말을 들으면 더 우울해진 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던져진 대답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단순한 것이라 4학년은 어안이 벙벙했다. 눈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자신보다 2살이나 어린 아이들을 가만히 훑어보던 코헤이타는 엷게 미소를 띄워 올리며, 양 옆에 앉아있는 미키에몬과 아야베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러고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자아! 그럼 나는 배구 약속이 있으니 이만~. 내가 준 힌트에 대한 대답을 잘 생각 해 보라구!' 라 소리치듯 말하고 방의 미닫이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그를 쳐다보는 4학년들의 표정은 썩 만족치 못했던 것 같지만, '네에…….' 하며 그들도 코헤이타를 따라 나갔다.
"하아아……."
그들이 앉아 있는 바위가 둘러싼 연못은 햇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연못 속에서는 잉어들이 입을 뻐끔거리며 먹이를 원하는 듯 했고, 그 근처에선 새파란 풀들과 이름은 모르지만 조화롭게 피어있는 들꽃들이 옅게나마 부는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는게 참으로 순박하고 자연적인 광경이었다. 그 사이에 끝나지 않을 것 만 같았던 침묵 속에서 탄식이 가득 서려있는 한숨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서 누군가가 '어떡하지' 라고 중얼거렸다. 4학년들은 지금 코헤이타에게 너무나도 식상한 대답을 듣고 나서부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코헤이타는 '주변에서 잘 해줘라' 라고 했지만, 그 잘 해준다' 를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지금은 더 중요했었다. 애초에 그들이 기대했던 모범 답안은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핵심'이 아닌 사건을 해결할 '방법' 그 자체였기에 더욱더 헷갈려 하고 있었다. 현재 그 세명은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은.
"어, 타키야샤마루 선배, 타무라 선배, 아야베 선배?"
힘없이 앉아있는 세 사람을 발견한 1학년 닌복을 입은 아이 세 명이 그들을 향해서 달려왔다. 좀 크다고 생각되는 안경을 쓴 심한 곱슬기의 오렌지빛 머리의 이나데라 란타로, 돈을 병적으로 좋아하고 목에 검은 머플러를 두른 셋츠노 키리마루, 먹을 것이면 환장하는 통통한 체격의 후쿠토미 신베였다. 1학년 이(い)반 담임 안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닌술학원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9할은 1학년 하반과 사무원 코마츠다의 소행'. 지금 상당히 시무룩해 있는 4학년들의 앞에서 눈을 똘망똘망히 뜨고 '무슨 걱정 있으세요?' 라 묻는 아이들은 그 천방지축으로 소문이 자자한 1학년 하(は)반의 일원이었다. 미키에몬이 후배들의 목소리에 떨구고 있었던 고개를 차차 들어올렸고 1학년 아이들을 한번 훑어본 뒤, '아.' 하는 소리를 냄과 동시에 옆에서 머리를 감싸쥐고 있는 타키야샤마루의 옆구리를 검지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자 상당히 짜증이 북받치는 듯 타키야샤마루가 고개를 비스듬히 올려 미키에몬을 썩 달갑지 않은 눈길로 올려다봤다.
"타키야샤마루, 이 애들한테……."
미키에몬이 지금 이 상황에서 싸움이 일어났다간 상당히 귀찮아 질 것 같았음으로, 타키야샤마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란타로, 키리마루, 신베는 계속 4학년을 바라보며 순수함에 젖은 눈망울을 끔벅이고 있었고, 옆에선 연못의 바위 위에 앉아서도 겁 없이 양반다리를 하고 삽의 손잡이 부분에 턱을 괸 채로 앉아있던 아야베도 졸린 얼굴로 어느샌지 미키에몬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키야샤마루는 처음엔 미키에몬이 무슨 의도로 한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심기불편한 표정으로 '어엉?' 하며 계속 미키에몬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비틀어 한 몇 초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그제서야 깨달은 듯 아아, 하는 소리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그래, 무슨 걱정 있다. 타카마루 형에 대한거야."
미키에몬의 한 마디에 1학년 세 명은 그 '타카마루 형에 대한 것'이 상당히 궁금했던 모양인지 헤에, 하는 감탄사를 내뱉고 눈빛을 더 반짝이며 얼굴을 미키에몬 쪽으로 갖다가 들이댔다. 그는 순간 뭔가 괜히 말했나 싶었었지만 후배들을 위해(?) 금세 말을 이어나갔다.
"타카마루 형이 아무래도 슬럼프인 모양인지라…… 아, 너네 슬럼프가 뭔진 아냐?"
"어유, 타무라 선배도 참! 저희가 그 정도로 무식할까봐."
살짝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미키에몬이 묻자, 키리마루가 어린아이 티를 팍팍 내며 귀엽게 발끈하면서 외쳤다. 그 대답에 미키에몬이 슬쩍 웃으며 '뭐, 그럼 좋아.' 라 중얼거리고, 그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우리가 무언갈 해 주고 싶은데…… 뭘 해 줘야 할 지도 모르겠고, 방법도 모르겠고. 그래서 이렇게 앉아있던 거야."
말이 끝나자 란타로가 흐응, 하는 소리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옆에서 키리마루는 신베에게 '슬럼프' 라는 단어의 뜻을 알려주고 있었다. 곧이어 신베의 단어 이해가 끝이 나자, 란타로가 뭔가 생각이 난 듯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탁 쳤고 4학년들에게 말했다.
"그런거면 간단하지 않나요? 타카마루 형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모르겠단 거야."
타키야샤마루가 한 마디 덧붙였다. 옆에서 아야베가 무관심한 듯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에, 타카마루 형이라면…… 좋은 머릿결이라던지? 막 있잖아요, 그 장터에 내려가면 사람들이 머릿결 좋은 가발 내놓고 파는거요. 그거 제법 비싸던데 팔면 돈이 얼마나 될련지 생각만 해도 설레이……."
"됐다, 너희에게 부탁한 내가 잘못이지."
키리마루가 어느새 눈을 금빛 엽전 모양으로 빛내고 있자, 미키에몬은 더 들어봤자 시간낭비일 것 같다는 양 그냥 그의 말을 칼같이 끊어버렸다. (어자피 키리마루는 또 제 혼자서 즐겁게 돈을 버는 상상을 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자 1학년들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제 갈 길을 떠나려는 양 발길을 돌렸다. 갑갑한 표정으로 1학년 세 명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미키에몬은 또 답답함에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 한숨 속에는 참으로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으리라. 뜬금없이 옆에서 계속 휘파람을 불던 아야베가 갑자기 휘파람 연주를 끊으며 '어라, 대화 벌써 끝났어?' 라며 물었는데, 이젠 그냥 그의 뒷북에 대꾸도 하기 싫었던 모양인지 미키에몬과 타키야샤마루는 둘 다 천천히 일어서서 터덜터덜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삽과 남겨진 아야베는 뭔 일인지 영문을 모르고 머리 위에 물음표만 열심히 띄우고 있었지만, 어찌됐건 그도 곧 함정을 파러 바위에서 일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시나마 이야기가 흐르고 있던 공간이 정적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이젠 그나마 남아있던 기운마저 빠져버린 그들이 정말로 필요시했던 건…… 정말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그들이 연못을 떠난 후 고작 몇 분쯤 지났을 무렵, 변함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연못에 나타난 타카마루도 4학년들이 머물렀던 바위에 앉아 혼자 연못과 수풀들을 감상하며 갖은 탄식을 내뱉았다는 것은 여담이다. 이렇게 모두가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풀꽃들은 기분좋게 살랑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초가을이 왔음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살짝 얼굴이 시릴 정도의 바람이 가볍게 스치고 가더니, 어느새 하늘엔 초승달이 휘영청 높게도 걸렸다.
"란타로, 키리마루, 신베!"
쾌청한 아침, 숲속의 새들마냥 귀엽게 조잘거리고 있는 1학년 하반 아이들이 있는 교실의 입구 미닫이문이 난폭하게 쾅 하는 소리로 열리더니, 상당히 분노에 겨워 있는듯한 4학년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상태를 보아하니 지금 누구라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을 한다면 타키야샤마루는 당장에 폭발하고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찾고 있는 1학년 세 명의 이름을 마치 대답하지 않으면 잡아먹을 듯이 불렀지만 안타깝게도 그 분노의 외침은 장터 온 마냥 시끌벅적한 1학년 하반의 잡담에 묻혀 결국 소음의 일부밖에 되지 못했다. 지금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불이 날 지경인 타키야샤마루의 상태의 이유라 함은, 이야기는 오늘 아침으로 돌아간다.
타키야샤마루는 언제나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지저귐을 경청하며 우물가에서 세안을 하고 있었다. 원래 같은 방 룸메이트인 아야베 키하치로도 깨워줘야 하지만 아야베는 항상 밤늦게까지 함정을 파는지라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인지 열심히 그의 몸을 잡고 흔들어도 웬만해선 잘 안 일어났기에 오히려 깨우다가 자신도 지쳐 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으므로 타키야샤마루는 그냥 자신 먼저 미리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해놓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칭 아름다운 자신의 얼굴을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많이 차가운 수돗물에 조심스럽게 씻어내는것을 끝내자 자신이 사용한 두레박을 제 자리에 가져다가 놓고 살짝 물기가 스며들어 있는 무늬 하나 없이 하얀 수건을 목에 둘렀고, 아직은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수돗가를 나서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발을 옮기려던 참이었다.
"타이라노 타키야샤마루 군? 아침 일찍부터 나왔네."
"아, 네. 안녕하세요. 도이 선생님."
썩 결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다 막 일어난 모양인지 부스스하기까지 했던 진갈색 머리가 살짝 날개뼈에 닿을락말락할 만큼 풀어헤쳐져 있었고 사이즈는 조금 저쪽이 더 컸지만 타키야샤마루와 같은 가운을 입고 있는, 풋풋하고도 외모는 제법 준수한 청년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닌자학교 교사진치고 상당히 젊은 편이었던 1학년 하반의 담임, 도이 한스케였다. 등을 돌리고 발을 떼던 타키야샤마루도 도이를 발견하자마자 그를 향해 꾸벅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도이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서로 잠시간의 아이컨택이 끝나자 타키야샤마루는 살짝 목례를 한 후 다시 몸을 돌려 한 발짝 아직 룸메이트가 자고 있을 방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도이가 뒤에서 방금 그가 씻고 나온 자리에서 물을 퍼담는지 우물속의 물이 출렁이며 철썩이는 소리가 경쾌히 들려왔다. 물을 한 바가지 가득 뜨자 순간 도이는 뭔가 생각난 듯 아, 라고 말을 내뱉았다.
"그러고보니 타키야샤마루 군. 타카마루 군에게 해주려는 건 잘 진행되고 있니?"
도이의 그 말에 타키야샤마루는 걸어나가던 발걸음을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씻고 있는 청년 쪽으로 홱 돌린 후 당황한 말투로 '네?' 라 되물었다. 타키야샤마루가 아직 타카마루 형에게 뭔갈 해주려고 계획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이 선생님께서 타카마루에 대한 4학년들의 행동을 알아차리신건지 타키야샤마루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그, 그걸 어떻게……?"
그는 살짝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도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상하단 표정으로 쳐다봤다.
"응? 어떻게냐니. 너희가 우리 반 아이들한테 말해준 거 아녔어? 4학년들이 타카마루를 위해 뭔가 해 주고 있다고 그러던데."
"……아아……."
그의 말에 금세 상황 파악이 되어버린 타키야샤마루는 차마 선생님 앞인지라 바락바락 화내진 못하였고, 그저 쓴웃음만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이 요망한 꼬맹이들' 하는 생각만 조금씩 차올랐다. 타키야샤마루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자 도이는 내가 뭐 잘못 말했나, 싶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니?' 라며 제법 다정하게 물었지만, 타키야샤마루는 상당히 불쾌한 기분을 애써 감추려 하며 한쪽 입꼬리만 부자연스럽게 올린 채 아무것도 아니에요. 란 말을 남기고 도이에게 살짝 목례를 한 뒤 목에 두른 수건을 펄럭이며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씻으러 나오고 있었을 때만 해도 그저 그랬던 이 길에서, 그는 달려가며 계속 이 망할 꼬맹이들, 망할 녀석들! 이라며 계속 중얼거렸고, 마침내 타키야샤마루가 방에 도착했을 때까지 아야베는 계속 새근새근 하는 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기분같아서는 그 얄미운 룸메이트의 몸을 발로 뻥 걷어 차 주고 싶었지만, 겨우겨우 그 욕구를 억누르며 타키야샤마루는 양 손으로 아야베를 열심히 흔들어 깨웠다. 그러는 와중에 그는 나중에 아침 자습시간이 오면 1학년 하반에 꼭 찾아가리라, 이글거리는 눈으로 수백번 다짐했다.
"야아, 이것들아! 조용히 좀 해 봐!"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타키야샤마루는 자신의 분노 가득한 외침이 무참히 짓밟혀 버린게 제법 괘씸했던 모양인지 제들끼리 둥글게 앉아 신나게 조잘거리고 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며 소리쳤다. 11명, 아니 그까지 포함해서 12명의 잡다한 목소리가 섞인 그 사이에서 용케 타키야샤마루의 고함소리를 들은 모양인지, 1학년 하반의 학급위원장인 쿠로키 쇼자에몽이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살짝 들어 놀란, 아니 놀랐다기보단 오히려 반갑단 표정을 지으며 '어엇, 타키야샤마루 선배다!' 라 외치자 다른 1학년 하반 아이들도 고개를 그가 있는 곳으로 돌리며 다들 반가운 표정으로 일제히 쇼자에몽이 바라보고 있는 와인색깔 닌자복을 입은 소년 타키야샤마루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들도 쇼자에몽과 똑같이 '어엇, 타키야샤마루 선배!' 라 외쳤다. 타키야샤마루는 얘네가 뭘 잘못 먹었나 싶어 미간을 팍 찌푸렸다.
"마침 딱 잘 오셨어요! 회의 중이었거든요."
갑자기 키리마루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잘 왔다니, 키리마루는 타키야샤마루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걸까.
"잘 왔다니 지금 무슨……?"
"타카마루 형을 위해 편지를 쓰는 건 어때요?"
타키야샤마루의 당혹스런 한 마디를 화려하게 끊으며 머리 스타일이 키리마루와 살짝 닮은 감이 없잖아 있는 단조가 크게 외쳤다. 순간 타키야샤마루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바윗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 아이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단조, 어자피 네 글자는 더러워서 타카마루 형이 못 읽을 텐데."
"그럼 민달팽이!"
'타카마루 형은 민달팽이 안 좋아할걸' 이라며 쇼자에몽이 핀잔을 주자, 키산타는 그런가~. 하며 에헤헤 하고 해맑게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아까처럼 시끌벅적해졌는데, 타키야샤마루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갈피를 못 잡고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키산타, 단조뿐만이 아니라 다른 하반 아이들도 각자 제들의 개성에 맞는 의견을 내고 서로 검토하고 있었다. 이스케는 타카마루의 방을 깨끗하게 해 주자 하였고, 헤이다유는 타카마루만을 위한 특별 가라쿠리를 만들어서 놀래켜주자는 둥 별의 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그럼에도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모두들 즐거워 보이는 게 타인이 본다면 아이들끼리 서로 의견을 나누며 대화하는 게 아주 보기 좋은 광경이라 느꼈을 것이다. 타키야샤마루는 어딘가에 머리를 한 방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 아이들이 타카마루 형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는 거지? 단순히 그가 이 아이들에게 친절히 대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복잡미묘한 생각들이 타키야샤마루의 뇌리를 한번씩 쿡쿡 건드리며 쏜살같이 스쳐나갔다. 그 따끔한 생각들 속에는 놀라움, 신기함, 이상함 등등의 감정이 섞여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자신을 아프게 못박은 감정은 '부끄러움' 이었다. 선배가 후배보다 뒤떨어졌다는 것에 대한건 둘째치고 일단 타카마루 형은 자신과 동급생, 4학년이지 않은가. 그런데 정작 그 4학년들은 자신들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도 제대로 못 잡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른 학년들이 타카마루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 지, 어떻게 하면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서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눈 앞에서 보게 되자 그 자체가 타키야샤마루에겐 나름대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왜지, 도대체 왜. 너희들이 왜?
"아, 타키야샤마루 형. 그거 아세요?"
"어, 어어?"
급작스런 란타로의 물음에 타키야샤마루가 얼떨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뜬금없이 아냐니.
"있잖아요, 지금 아마 다른 학년들도 저희처럼 의논하고 있을걸요? 타카마루 형을 응원하기 위한 방법요."
시끄러운 와중에서도 똑똑히 들려오는 란타로의 말에, 타키야샤마루는 이제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돌려 입구로 타박타박 걸어가며 하반의 미닫이문을 들어왔을 때와는 반대 방향으로 밀었지만 들어왔을 때 처럼 과격하게 열진 않았다. 나가는 그의 표정은 화난 기색이 전혀 사라져 있었고 도리어 감동을 받았달까, 그런 아련한 표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교실 바깥으로 나오자 란타로의 말이 사실인 모양인지 평소처럼 교실 앞 복도에서 뛰어놀고 있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고 교실 창문 사이로 보이길 다들 자기네들 교실 안에서 1학년 하반처럼 둥글게 앉아 있는 반도 있었으며, 일제히 책상에 앉아 학급위원장의 지도 내에서 무언갈 하고 있는 반도 있었는데 어쨌던간 다들 회의 비스무리해 보이는 것들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건 1학년 이, 로, 하반만이 꾸미고 있던 일도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러본 2학년, 3학년, 5학년, 심지어 6학년 교실에서도 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닌술학원의 모든 학생들이 '사이토 타카마루'라는 한 학생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키야샤마루는 이상하게 목 아랫부분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이리저리 뒤섞인 북받침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는 간신히 그것들을 꿀꺽 삼켜서 다시 집어넣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들인지 알고 싶지만 알 방법이 없는듯한 게 그는 자기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었고, 타키야샤마루는 여전히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이 상황을 4학년 급우들에게 설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이리저리 파헤집고 있었다.
"뭐?"
복도 한가운데에서 침묵이 잠시나마 흘렀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반에 찾아와 타키야샤마루가 바깥으로 불러낸 타무라 미키에몬과 아야베 키하치로는, 방금 전 1학년 하반에 찾아갔다가 온 그가 단조의 말을 듣고 지은 표정과 유사한 얼굴을 하고 타키야샤마루가 내뱉는 거짓말같은 말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전교생이 사이토 타카마루 한 사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니. 왜인진 몰라도 참 신기한 상황 아닌가. 물론 타키야샤마루가 본 그 현장들이 거짓된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가 1학년 하반에서 본 것들은 절대로 겉치장이 아니었고, 그 진실과 순수함만 가득했던 목소리들이 거짓으로 찌들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었기에 타키야샤마루는 지금 벌어지는 이 일들이 누가 뭐래도 사실이라 철썩같이 믿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서서 듣는 미키에몬과 아야베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젠."
타키야샤마루가 짧게 말했다. 그는 지금 이성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한게 자칫하면 울 것만 같았다.
"우리도 나서야 한다고?"
그 뒷 말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아야베가 살짝 장난기 품은 목소리로 의문형으로 말했다. 평소같았으면 '키하치로 녀석! 대사 뺏지마!' 라며 발광했을 타키야샤마루지만, 오늘은 결의를 다지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고, 미키에몬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난히 오늘따라 다른 반보다 조용하기도 하고, 타카마루의 반이기도 한 4학년 하(は)반의 팻말을 흘깃 쳐다본 후 다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채 빙긋 웃었다.
뭐, 이렇게만 보면 거창할 것 같아 보여도 이들이 계획하는 건 별 거 아니긴 하다마는.
오늘따라 시간은 누구에게 쫓기듯 급하게도 흘러갔다. 해가 뉘엿뉘엿 서쪽 동산 사이로 사라져가고 하늘은 살짝 연보랏빛이 감돌면서도 낮의 푸름을 잃지 않은 묘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확실히 추분(秋分)이 점점 가까워져 오자 슬슬 해가 일찍 모습을 감추어 가는게 실감나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어둑어둑한 저녁식사가 찾아오는 것 같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뱃 속에서 뭔가 영양분이 될 만한 걸 좀 넣어달란 요구를 해올 때 즈음, 교정 한 가운데에서 저녁식사를 알리는 경쾌한 종소리가 학교 곳곳으로 울려퍼졌다. 자신의 방에서 하나 둘씩 나오는 4학년들은 어제보다는 훨씬 밝아보이는 얼굴로 언제나처럼 맛있는 냄새를 한껏 풍기고 있는 식당을 찾았다. 세명 중 맨 먼저 식당 입구를 밟은 미키에몬이 뜨겁게 펄펄 끓고 있는 국의 간을 보고 있는 식당 아주머니에게 쾌활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며 꾸벅 인사했다. 이어서 들어오는 타키야샤마루, 아야베도 미키에몬을 따라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식당 아주머니도 그들의 인사에 얼굴에 인자한 미소를 띄우시며 '어서 오렴.' 이라 맞아주셨다. 인사가 끝난 후, 4학년들은 앉을 자리를 찾으려는 듯 일제히 고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빈 자리가 너무나도 많았던 게, 누구라도 굳이 자리를 찾으려 고생할 필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특별한 자리' 를 원하는 듯이 계속 어디에 앉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아야베가 '오오.' 하며 한쪽을 손으로 슬쩍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자리는 상당히 구석진 자리였는데, 그 테이블엔 단 한 사람이 앉아있었다.
어쨌던 그들은 아야베가 가리킨 테이블로 거의 달려가다시피 덤벼들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와 의자를 끌어당긴 모양인지 그들이 의자 위에 털썩 앉은 순간 테이블에 팔을 올리고 혼자 멍하니 앉아있었던 학생, 사이토 타카마루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미키에몬은 달려오면서 모난 테이블 모서리에 옆구리를 찍었는지 자신의 허리를 계속 쥐고 있었지만, 내심 어이가 없어하는 듯한 타카마루 앞에서는 아파도 웃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표정이 조금 부자연스러웠단게 흠이지만.
"아, 안녕하세요. 타카마루 형? 좋은 점심, 아니 저녁이죠?"
타카마루의 오른쪽 대각선 방향에 앉아 있는 타키야샤마루가 그에게 인사를 하며 아무래도 제대로 긴장한 모양인지 계속 말을 더듬었다. 누가 봐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타키야샤마루가 답답한 듯 아야베가 옆에서 그의 발을 잘근 밟았지만 차마 타키야샤마루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수도 없이 바로 옆에서 아무 것도 안 했다는 듯 능청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아야베를 살짝 노려봤다.
"응. 좋은 저녁인 것 같아."
타카마루는 제법 유머스럽게 등장한 그들에게 살짝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는 본인 나름대로 웃어 보이려고 노력한 것 같았지만 공교롭게도 타카마루는 입만 웃고 있었지, 그 반면에 눈은 무표정이다 못해 싸늘했다. 이런걸 '거짓 웃음' 이라고 하던가. 그의 겉만 웃고 있는 표정에 왜인지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기에 타카마루를 제외한 4학년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저, 타카마루 형."
아야베가 타카마루를 정면에서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왜?"
"그, 요즘 왜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번엔 타키야샤마루가 아야베의 발을 꾸욱 밟았다. 아차, 싶은게 아야베의 얼굴에는 순간 발을 밟힘에 대한 고통과, 자신의 순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을 꺼내버림에 대한 책망이 빠르게 스쳐지나갔지만 그것도 잠시 곧 평소다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발이 아프긴 아팠던지 입술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미키에몬도 옆에서 '나중에 보자, 아야베' 하며 아야베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리 호들갑(?)을 떨고 있는 세 명과는 달리 타카마루는 아야베의 말을 듣고도 별 표정 변화가 없었는데, 그게 또 나름대로 무서웠다. 일을 그르치게 될 상황에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대답을 기다려 보자는 듯 타카마루의 앞에서 세 명이 눈을 번뜩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카마루는 살짝 아랫입술을 깨무는 듯 싶더니 곧 굳게 다물어져 있던 입을 열며 말했다.
"내가 뭘?"
아니, 이 양반이. 그의 한 마디에 4학년들의 표정이 순간 뭐 씹은 것 마냥 굳어졌다. 아마 그들의 머릿속에선 '당신이 제일 잘 알고 있잖아!' 라며 바락바락 따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학년은 같지만 일단 나이로썬 형이니 4학년들의 얼굴에선 열심히 이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역력했다. 사실 이들도 타카마루가 본인의 상태를 부정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막상 눈 앞에서 이런 대답을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던 것도 당연했다.
"아니 '내가 뭘' 이라뇨? 요즘따라 잘 웃으시지도 않잖아요!"
아야베가 답답하단 듯 얼굴을 타카마루에게 들이대며 따졌다. 오늘따라 그의 목소린 어울리지 않게 다소 앙칼지고도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다. 티는 잘 안 났지만 타카마루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공부도 평소같이 열심히 하시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이어서, 팔짱을 끼고 타카마루를 바라보며 추궁하듯 묻는 타키야샤마루. 그의 말에 어딘가에 한 대 맞은 양 타카마루는 죄를 지은 아이처럼 고개를 아래로 천천히 떨구고 있었다.
"그거 아세요? 타카마루 형, 지금도 그렇고 며칠 전부터 '나 우울합니다' 란 걸 광고하는 것 같다구요. 분위기도 그렇고, 말투도……"
어찌하다 보니 다들 죄를 추궁하는 듯한 말투가 되어 버렸지만, 어쨌건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미키에몬이 제법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날카롭게 타카마루를 쳐다보려던 찰나, 갑자기 자신이 하던 말을 뚝 끊었다. 그가 보고 있는 앞에서 어느새 금발머리 소년은 어느새 어깨를 움츠리고 빗물에 젖은 불쌍한 고양이마냥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미안함 때문인지 고개를 아래로 떨굼으로써 앞머리도 블라인드처럼 내려와 있었기에 그의 얼굴의 대부분이 가려진 채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그림자 드리워진 타카마루의 얼굴은 이미 '애처로움' 을 넘어서, 작게나마 보이는 눈망울엔 여태껏 보지 못했던 그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타카마루 형?"
무언가 그의 상태가 이상해진 걸 느낀 듯 타키야샤마루가 자신의 얼굴을 앞으로 빼서 타카마루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그가 눈부시듯 밝은 금발 사이에서 본 장면은, 타카마루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마치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꽉 잠그지 않았을 때 새 나오는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황한 타키야샤마루가 '잠깐, 형! 왜 우는 거에요? 저희가 뭐 잘못 말 했어요?' 라 달램 아닌 달램을 해 주고 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음소거되어 있었던 눈물의 볼륨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흐윽, 큽. 하는 숨소리가 귀에 똑똑하게 들릴 정도로 커졌고 미키에몬과 아야베도 놀란 표정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울릴 생각은 없었고, 아니 애초에 이 정도로 울 것 까지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타키야샤마루는 말로 열심히 그의 울음을 달래는데 급급했고, 옆에서 어찌할 지 모르며 어물쩡거리고 있는 아야베와 미키에몬을 노려보며 입모양으로 '너네들도 뭔가 좀 해 봐' 라고 말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야베가 타카마루를 토닥이려는 듯 겨우 손을 내미려는 순간, 갑자기 그가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서서히 들었다. 촉촉해진 눈가와 잘 익은 사과마냥 잔뜩 붉어진 뺨이 유난히 눈에 띄게 보였다.
"……미안해……."
가련하게 흘러나오는 눈물의 숨소리 속에서 들려온 한 마디.
"미안하다뇨……?"
돌이켜보니 자신의 말이 조금 심했던가 싶었는지 타카마루에게 손을 뻗으려 한 참이었던 아야베가 엉거주춤한 자세를 제대로 고치며 여전히 훌쩍이는 그에게 작게 물었다.
"나, 많이 했는데, 고민…… 내가, 닌자를 해도 되나 싶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4학년에 편입해서, 괜히…… 흐윽, 타키야샤마루 군이나 미키에몬 군, 키하치로 군에게 민폐나 끼치고 사는게 아닐까 싶어서……."
타카마루는 지금 여러가지로 거의 제 정신이 아녔던 데다가, 그나마 새어 나오는 작은 목소리마저 안쓰러운 숨소리와 딸꾹질에 젖어 그 의 말은 알아듣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한 문장으로 추정되는 말이 끝내자마자 곧이어 눈 앞의 식탁을 애처로이 바라보던 타카마루의 시선이 아까처럼 한번 더 떨궈졌다. 그는 확실히 흐느끼고 있었다. 만약에 누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면 4학년들이 타카마루를 일방적으로 괴롭힌 줄 알았을 것인데, 다행히도 오늘따라 학생들이 단체로 저녁식사 종 소리를 못 들은것도 아닐텐데 식당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식당 아주머니도 주방에서 밥을 퍼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키에몬이 손등으로 열심히 눈가를 부비고 있는 타카마루가 안쓰러운 듯 고개를 앞으로 살짝 내밀어 타카마루를 애틋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민폐라뇨, 이쪽에선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걸요? 뭐, 그런 생각 한번 쯤은 해 보는게 정상이지만요."
"……정상, 이라니?"
살짝 고개를 들어 자신에게 애잔한 시선을 주고 있는 미키에몬을 지그시 바라보는 타카마루. 그는 코도 막혀버려 갑갑한지 한번 콧물을 킁, 하고 들이마시며 물었다. 타카마루의 얼굴은 찜질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처럼 얼굴이 완전히 홍당무마냥 붉어져 있었다.
"저만 해도 유리코가 마음처럼 잘 쏴지지 않아서 한동안 계속 시무룩했던 적이 있었는걸요.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일걸요? 저렇게 허세만 가득찬 타키야샤마루도, 함정 파는데에만 안달이 난 키하치로도 그렇구요."
아야베는 그 말에 오, 하며 제법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지만 타키야샤마루는 '허세만 가득한' 이란 구절에서 미간을 찌푸리며 미키에몬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미키에몬은 그 시선에도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 조금 짜증나지만 미키에몬 말이 틀린 건 아니에요. 가끔씩 전 제가 봐도 왜이리 아름다운지 그만 스스로에게 빠져버릴 때도 있고 결국엔…… 웁."
타키야샤마루가 이 진지한 상황에서 뜬금없이 며칠간 안 했던 것 같은 자기 자랑 을 늘어놓으려는 듯 하자 옆에 있던 아야베가 어지간히도 듣기 싫었던 모양인지 급히 그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당황한 얼굴로 그 손을 떼어내려고 발악을 하는 타키야샤마루의 표정과 행동은 참 볼만했다. 한 쪽 손으로 열심히 같은 반 급우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을 막고 있는 아야베는 평소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런 일 있어요. 때때로 제가 판 함정에 스스로 빠져버릴 때마다 얼마나 한심한지."
"키하치로 군도?"
타카마루가 게슴츠레 뜬 눈을 손 끝으로 살짝 부비며 살짝 의외라는 듯 아야베를 바라봤다. 여전히 코도 훌쩍이고 있었고 눈가에 눈물도 맺혀 있었지만 그는 동급생들의 말 덕분인지 아까만큼 불행한 표정을 짓진 않고 있었다. 오히려 작게 뜨여져 있었지만 타카마루 의 눈동자는 조금이나마 빛나고 있었던 것이,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그의 기분이 제법 나아진 듯 했다.
"것 봐요, 다들 그렇다니까? 누구나 한번씩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고, 여러 번 실패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거잖아요. 그러니까 타카마루 형도 어서 기운 내세요. ……응원, 해 드릴테니까요."
제법 그럴듯 한 말을 한 미키에몬이 이런 진지한 위로를 던진 자신 스스로에게 어색함을 느낀 모양이었는지 헛기침을 큼큼, 하며 살짝 붉어진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렸다. 타카마루는 그 말을 듣자 살짝 얼이 빠져서 벙져있었다. 그는 곧 눈을 끔벅이며 턱을 괴고 수줍은 듯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나 싶더니, 벌려진 입의 양 옆이 조금씩 올라가고 어느덧 어린아이 마냥 소리없이 환히 웃고 있었다. 아직 뺨과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기에 손등으로 눈물에 얼룩진 얼굴을 조금씩 문지르긴 했지만 아까처럼 울상을 지은 불행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조금씩 눈이 물기에 젖긴 했지만 그것은 자책의 눈물이 아닌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리라. 그 는 아직 딸꾹질이 덜 멈췄던 듯 흑, 하는 숨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을 엷은 미소를 띄우며 바라보고 있는 동급생, 학년은 같지만 자신을 위로해 주었던 나이로만 치면 두 살이나 어린 동생들을 향해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밝게 외쳤다
"고마워…… 너무."
크디큰 식판 위에 네 학생의 식사를 올려다 가져 오시던 식당 아주머니께서 그 광경을 보고 뭔 일이 있나, 싶어 흠칫 놀라는 분위기였 지만 식탁 가까이게 갔을 때, 타카마루가 고마워, 라고 하는 말을 어렴풋이 듣자 곧 상황 파악이 된 듯 인자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식탁 위에 식판을 내려다 놓고 '맛있게 먹어~.' 라는 말과 함께 기분이 좋은 듯 바보처럼 헤벌레 웃고 있는 타카마루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타키야샤마루, 아야베, 미키에몬도 드디어 근심거리가 하나 해결되어서 그런지, 아니면 자신들이 타카마루 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 때문에 그러는지 어쨌거나 저쨌거나 타카마루 못잖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자신들 앞 식판에 놓여진 먹음직스런 식사들을 눈으로 한 번 훑은 후 젓가락을 집어 일제히 '잘 먹겠습니다' 라 우렁차게 외치고, 이때까지 여러 고민때문에 어영부영 했던 식사를 며칠만에 제대로 시작했다.
"있잖아, 오늘따라 왜이리 식당에 사람이 없지? 4학년 빼고 단체로 훈련인가?"
식사를 한 판 제대로 치르고 빈 그릇들과 수저들만이 올라와 있는 식판을 식당 아주머니께 가져다 드리며 아야베가 물었다. 확실히 그건 그랬던게 식당에는 제들 4학년밖에 있지 않았다. 심지어 맨날 배가 고프다고 열심히 달려 항상 1등으로 도착하던 신베도, 그를 쫓느라 생고생인 친구들인 란타로와 키리마루도 없었다. 사람의 기척이라곤 식당 아주머니의 설거지를 하며 그릇이 딸각거리는 소리 와 식당을 나가기 위해 발을 옮기는 4학년들의 발소리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참말로 고요한게 평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4학년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식당을 두리번거렸지만 식당 아주머니는 그런 것엔 별로 신경쓰시지도 않는 것 같았다.
"그런 모양이네."
이제 완전히 이성을 되찾은 타카마루가 검지손가락으로 뺨을 살짝 긁으며 중얼거렸다. 뭐 어떻게 보면 그에겐 식당에 아무도 없다는게 더 잘 된 일이었을수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긴 창피했을테니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은 식당 아주머니께 가볍게 인사를 드린 후, 자신들 이외엔 아무도 있지 않은데다 심지어 불까지 꺼져 있어 적막하고도 으스스한 복도를 걸어갔다. 삐걱거리는 나무 판자소리가 제법 거슬리는 소음으로 귓가에 들려왔다. 4학년들은 어둠 속을 열심히 걸으며 바깥이 조금 시끌벅적한게 아무래도 다른 학년들은 훈련을 하고 있는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단체로 이렇게 식사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테니까. 마침내 식당 건물의 입구 앞까지 다다르자 바닥이 삐걱이는 소리도 멈추고, 그들 중 누군가가 나무 미닫이문을 거친 소음과 함께 활짝 열었다.
그리고 바깥은 환했다.
"아?"
순간 무언가에 눈이 부셔서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순간 알 수 없는 곳에서 (추측상으론 왼쪽에서) 첫번째로 이상한 화약같은게 터지며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공격하려고 사용한 화약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말하길, 4학년들이 눈이 부셔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을 때 즈음 어렴풋이 보이던 것으로는 그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여태껏 보지 못한 것 같았던 화려한 불꽃들이 사방으로 터져 올랐다더라. 곧이어 아까 화약이 터진 곳과는 반대쪽인 곳에서도 한번 더 화약이 터지는 소리가 펑, 하고 시끄럽게 들려왔고 폭발은 자꾸 이어졌다. 정신이 없던 와중 타카마루는 순간이었지만 웃고 있는 도이 선생님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뭐, 뭐야?"
미키에몬이 연신 이어지는 폭발에 당황스러워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는 상태로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제서야 저 멀리, 아니 그래봤자 한 30미터 쯤 되는 거리였을까. 그 쪽에서 '그만! 그만!' 하는 외침이 들려왔고, 이젠 거의 미친듯이 터뜨린다고 할 수 있을만큼 터져오던 화약의 소리가 사라지고 잠시나마 고요해졌다. 그리고 식당 건물 앞에서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는 4학년들이 상황이 끝났는가 확인하려 눈을 뜨던 순간, 천 따위가 펄럭이는 소리가 그들의 귀에 파고들었다.
"타카마루 형!"
"타카마루."
"사이토 타카마루 씨."
여러 방향에서 일제히 들려오는 타카마루의 이름. 그 목소리들의 주인공은 귀여운 하급생들이기도 했고, 자신보다 어린, 혹은 나이가 같은 상급생들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선생님들이기도 했다. 아직 앞이 침침한지 눈을 살짝 부비며 그 목소리들이 열심히 부르고 있는 이름의 주인인 타카마루는 도대체 이 상황은 무언지, 하며 벙진 표정으로 어둡지만 화약 덕분인지 조금이나마 밝아진 듯 느껴지는 주변을 훑었다. 그리고 그는 곧 이게 꿈이 아닌가 자신을 의심해야 했다. 일렬로 자신을 밝은 표정으로 응시하며 죽 서 있는 닌타마들. 1학년의 우물 정 자와 원이 불규칙하게 배열되어 있는 푸른색 닌복, 2학년의 남색에 가까운 닌복, 3학년의 연녹색 닌복, 5학년의 보라색 닌복, 6학년의 진녹색 닌복에다가 교사진의 검정색 닌복까지 모두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일렬로 좌악 서 있었다. 이게 뭔지 타카마루만이 아니라 4학년들도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나 2학년과 3학년 사이에는 크디큰 현수막이 하나 띄워져 있었는데, 흰 바탕의 현수막 위에는 똑똑히 잘 알아볼 수 있는 큰 글씨가 반듯히 써져 있었다. 「타카마루 형 힘내세요」 라는 문구. 타카마루의 큰 눈망울엔 전교생이 그를 향해 환히 웃는 얼굴과 손을 열심히 흔드는 모습이 담겨졌으며 한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받아서일까. 곧 타카마루는 아까전 식당 안에서마냥 눈시울이 또 붉어졌고, 어느덧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 지 않아 또다시 옷소매로 눈가를 열심히 부비며 눈물을 닦고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타카마루 혀, 형. 뭘 또 울고 그러세요. 남자답지 않게시리."
"타키야샤마루, 그러는 너도 반 쯤 울 것 같은걸."
"내, 내가 뭐."
자기네들도 예상치 못한 전교생들의 이벤트가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울컥한 표정을 지은 타키야샤마루가 핀잔 아닌 핀잔을 주자 아야베가 놀리듯 말했다. 그 와중에도 타카마루는 계속 흐느끼고 있었는데, 멀리서 1학년들이 '형, 감동 받았나 봐!' 하며 기쁜 목소리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그들 옆에서 분위기 파악 좀 하라며 조용히 하라고 그들을 타이르는 2학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아니 그래봤자 3~4분정도 밖에 안 되겠지만 계속 얼굴만 미친듯이 비비고 있던 타카마루가 마침내 젖은 옷소매를 얼굴에서 떼고 잔뜩 빨개져서, 마치 오랫동안 좋아하던 아이에게 고백을 받은 듯한 붉은색으로, 하지만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양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감동에 젖어버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였지만 그는 이 한 마디만은 꼭 그들에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정말 전하고 싶었기에 아무리 목이 막히고 아파도 최대한 큰 소리로 모두에게 외쳤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입 속에서 가득 맴돌고 있었기에 답답했던 침을 꿀꺽하고 삼켰는데, 그것들은 자신을 에워싸고 있던 고뇌들이자 잠시나마 힘들었던 과거들을 포함하고 있었으리라. 눈 앞에 그 많디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 저녁까지 거르고 준비해준 아름다운 광경들과 옆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자신을 가만히 토닥이고 있는 소중한 동급생들 덕분에, 이제 사라진다. 짧았지만 혼자 아팠던 나날들…….
~Epilogue
에필로그.
"타카마루 혀어어어어어엉!"
너무나도 한가로워서 지나다니며 짹짹 우는 새소리에 잠이 들어 버릴만큼 평화로운 어느날 휴일 아침, 4학년 하(は)반의 사이토 타카마루를 찾는 목소리가 4학년 기숙사 내에 요란하게도 울려 퍼졌다. 곧이어 나무 판자 복도를 두다다다, 하며 기세 좋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제 저녁의 소동으로 나름대로 지친 모양인지 타카마루가 깊이도 자고 있는 기숙사의 미닫이문이 거칠게 다라락 열렸다.
"타아카아마아루우 혀어어엉!"
"히에에에엑!"
한 8시는 됐을련지 싶은 이른 아침부터 자신을 부르는 거대한 벼락같은 소리에 타카마루는 본의 아니게 허겁지겁하며 상당히 빠른 기상을 했고, 비몽사몽한 얼굴로 자칫하면 옆 방에 자고 있는 학생들마저 깰 수 있을만한 목소리로 자기를 부른 목소리의 근원을 두리번거리며 열심히 찾고 있었다. 그가 드디어 방문 쪽을 바라보았을 때엔 1학년 하(は)반으로 추정되는 11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자신을 바라보고 (노려본다고 하는것이 더 알맞을지도) 있었다. 안 그래도 정신이 없는데 그 많은 아이들이 방에 침입했다니, 타카마루로써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달콤한 잠을 자고 있던 중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1학년 하반 아이들은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쇼자에몽을 선두로 하나 둘씩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타카마루 형, 며칠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왜 그렇게 시무룩해 계셨던 거죠?"
"동급생들과 무슨 일이 있었어요?"
"분명 타키야샤마루 선배가 뭐라고 했을걸."
"아니면 성적이 너무 안 나와서? 그건 저희들에겐 일상인데!"
"위원회 활동 중에 화약이 폭발하기라도 하셨나요?"
"아니, 그런 일은 없었을걸?"
타카마루와 같은 화약위원회 소속인 이스케가 말을 끝내고도 질문연사는 계속되었다. 옳아, 이 아이들은 타카마루가 왜 그리 힘들어했는지 이유도 몰랐고 그저 '위로해 주어야 한다' 라는 생각으로만 움직였을 것이다. 아마도 4학년들 빼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겠지. 사실 타카마루는 이런 상황도 각오하고 있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렇게나 갑작스레 물어올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이 수많은 질문들에 당황스런 표정으로 어버버하고만 있었다. 슬프게도 '자, 잠깐만……' 이라 외칠 틈도 없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하반 아이들 중 맨 뒤에서 열심히 제 할 말을 하고 있던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가진 란타로의 흰 잠옷을 위로 잡아 당겨 올렸고, 그로 인해 타카마루에게 떨어지던 질문공세는 잠시 멈추고 모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공중에 떠 있는 란타로와 그를 잡고 있는 소년을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봤다. 놀랍게도 그는 6학년 로(ろ)반 나나마츠 코헤이타였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짓고 1학년 아이들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귀여운 후배들아, 너희들도 계속 닌자의 길을 밟게 된다면 언젠가 한 번 쯤은 거치게 될 코스니까 너무 지금부터 빨리 알려고 할 필요는 없어!"
언제나와 같이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란타로를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트린 코헤이타는(덕분에 란타로가 '나나마츠 선배! 다칠 뻔 했잖아요!' 라며 계속 바락바락 따져댔다)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본인을 올려다보고 있는 타카마루를 향해서 왼 팔을 앞으로 뻗으며 멋지단 의미일까, 자기가 잘 했다는 의미일까 알 수 없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1학년 하반 아이들도 멍하니 그 엄지손가락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론 코헤이타의 말의 의미를 찾으려고 나름 애쓰고 있었다.
아직 이부자리 정리도 못 했는데 벌써부터 정신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타카마루에게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을 모양이었다. 그래도 그는 마냥 좋다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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